오전 8시 48분경 세월호의 침로는 135도였습니다. 조타실 당직 박한결 3항사가 조타수 조준기에게 “아저씨, 140도요.”라고 변침을 지시했습니다.
조준기는 조타기를 우현 5도 정도로 맞췄다가 가운데로 되돌렸습니다. 조타기 눈금이 140도에 다다르자 “140도, 써(sir).”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멈춰야 할 눈금이 140도를 넘어 계속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조준기의 응답을 들은 박한결은 다시 한번 “아저씨, 145도요.”라며 우현 5도 추가 변침을 지시했습니다. 그때 조준기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 어, 안 돼, 안 돼.”
이미 첫 번째 우현 5도 조타를 했을 때 조타장치가 고장나며 방향타가 통제되지 않은 채 계속 오른쪽으로 돌아갔던 겁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우선회 속도가 빨라지며 선체는 점점 왼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평형수가 부족해 기울기는 더 커졌습니다. 고박도 제대로 않고 과적한 화물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선체는 49도까지 기울며 쓰러졌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49초 무렵단원고 최덕하 군이 전남119에 신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남119가 3자통화로 목포해경을 연결해 해경이 사고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경세월호 조타실에서는 강원식 1항사가 제주VTS에 사고 사실을 알렸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5분경123정 - 현장에서 가장 가까웠던 123정은 세월호와 교신도 없이 무작정 달려갔습니다. 구조 계획이 없는 구조세력이었습니다.
해경 지휘부 - 배가 점점 기울고 모든 승객들이 선내에 머물고 있다는 현장 보고가 반복돼도 해경 지휘부는 어떤 적절한 지시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구조 지휘가 없는 지휘부였습니다.
선원 - 그러자 현장 구조세력들은 배 안의 수백 명을 그대로 두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만 한 명씩 태웠습니다. 선원들은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다가 헬기와 구조정에 올라탔습니다. 배 안에서는 승객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방송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청와대 - 현장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청와대는 수시로 해경청에 전화를 걸어 구조 인원 보고와 대통령에게 보여줄 현장 영상 송출을 반복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이러면서 금쪽 같은 100분이 속절 없이 흘러갔고, 300명 넘는 승객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세월호는 물 속으로 잠겼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30분경8년전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 동안 있었던 일들을 객관적 기록인 영상과 음성, 문자 데이터들만으로 재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반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입니다.
시청각 타임라인을 통해 인천항 여객터미널에 단원고 수학여행단이 도착한 4월 15일 오후 5시 30분부터 세월호가 선수 일부만 남기고 침몰한 직후인 4월 16일 오전 10시 40분까지 총 17시간 10분 동안의 ‘사실 기록’을 보실 수 있습니다.
PART1은 단원고 짙은 안개로 대기하던 세월호가 출항할 때까지, PART2는 밤새 항해를 계속해 다음날 아침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PART3는 세월호가 급격히 쓰러진 뒤 진행된 승객 구조 작업과 선체 침몰까지의 기록입니다..
시청각 타임라인에는 뉴스타파가 장기간의 세월호 탐사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총 772GB 분량의 영상과 음성, 문자 데이터가 담겼습니다.
영상 데이터는 인천항 CCTV, 여객터미널 대합실 CCTV, 세월호 선내 CCTV, 세월호 화물칸에 실렸던 차량들의 블랙박스 녹화물, 승객들의 휴대전화 촬영물, 해경 구조세력(123정, 헬기 511호·512호·513호·505호, CN235 초계기, 전남 어업지도선)의 촬영물, 사고 현장에 접근했던 민간 선박(두라에이스호, 드라곤에이스 11호)의 촬영물입니다.
음성 데이터는 승객들의 119 및 122 신고전화, 세월호와 인천·제주·진도 VTS 사이의 교신(VHF), 해경 구조세력의 교신(TRS), 어업통신망 교신(SSB), 각급 해경 상황실(해경 본청, 서해청, 목포서)의 경비전화, 해경 본청과 청와대 간 핫라인 음성 파일들입니다.
문자 데이터는 해경의 문자상황보고시스템 내역과 세월호의 AIS 항적 원문 자료입니다.
시청각 타임라인의 구현 방식은 세월호의 출항과 항해, 사고, 구조 관련 다양한 출처에서 생성된 영상과 음성, 문자 데이터를 ‘실제 시간’으로 ‘동시에’ 보고 듣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각 데이터 속에 포함된 잘못된 시간 정보를 실제 시간으로 환산해 일치시키는 ‘시간 동기화’ 작업이었습니다. 특히 PART3의 경우, 승객 구조 과정에서 세월호 안팎에서 벌어진 상황과 해경 등 구조세력의 교신 내용들을 모두 실제 시간에 맞춰 선후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야만 당시 해경의 승객 구조가 얼마나 적정하게 이뤄졌는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상 데이터의 경우, 승객들과 해경 123정, 헬기 512호, 두라에이스호, 드라곤에이스 11호의 영상은 모두 휴대전화로 촬영돼 파일명이 실제 녹화 시작 시간으로 저장되어 있어 동기화가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헬기 511호와 513호, 505호, CN235 초계기, 전남 어업지도선,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영상은 촬영 장비에 세팅된 시간값과 실제 시간 사이에 크고 작은 오차가 있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영상들 속의 세부 장면들을 정밀 분석해 상호 동일한 순간들을 같은 시각으로 정렬함으로써 시간 동기화를 완성했습니다.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영상의 경우는, 지난 2018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분석한 동기화 결과를 인용했습니다.
음성 기록물의 경우는 시간 오차가 더욱 컸습니다. 뉴스타파는 먼저 해경 본청 경비전화 파일 중 여인태 경비과장이 김경일 123정장의 휴대전화로 통화했던 기록을 기준으로 시간 오차를 보정했습니다. 검찰 수사기록에 나와 있는 김경일 정장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중 해당 통화의 시작과 마무리 시점을 특정해 비교한 결과, 해경 본청 경비전화 음성파일은 실제 시간보다 12분 49초 늦은 시간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본청 상황실에서 녹음된 해경-청와대 핫라인의 오차도 이와 같았습니다.
김경일 정장과 여인태 경비과장의 통화 자료는 해경 TRS 음성의 시간 동기화에도 활용됐습니다. 해당 통화가 이뤄지는 도중 해경 본청 상황실에 울려퍼지는 헬기 511호의 TRS 교신 음성이 포착됐기 때문입니다. 계산 결과 TRS 음성 파일에 기재된 시간 정보는 실제보다 1분 5초 빨랐습니다.
진도VTS의 VHF 교신 음성의 경우는, 검찰 수사기록 중 D브리핑 동영상과 세월호 AIS 항적 데이터를 비교해 동기화에 성공했습니다. D브리핑이란 진도VTS 관제화면과 교신 음성을 함께 저장했다가 꺼내볼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관제화면 속에서 사고 직후 표류하던 세월호의 뱃머리 방향이 270도를 향하는 시점을 AIS 데이터의 뱃머리 270도 시점과 일치시킨 결과, 진도VTS 관제 시스템에 입력된 시간 정보는 실제 시간보다 53초 늦었던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시청각 타임라인은 크게 ▲4분할 화면 ▲항적 애니메이션 ▲데이터 소스 트랙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측 ‘4분할 화면’에는 동일 시간에 생성된 최대 4개의 영상 데이터와 1개의 음성 데이터가 동시에 재생됩니다. 화면에 담긴 영상과 음성은 뉴스타파가 동시간대 가장 중요한 데이터라고 판단해 선택하여 제공하는 것들입니다.
좌측 ‘항적 애니메이션’ 속에는 세월호의 항해 상태가 4분할 화면의 재생과 동기화되어 표시됩니다. 세월호의 위경도와 속력 정보를 연속적으로 제공하고, 사고 시점부터는 선체의 기울기 변화가 나타나도록 했습니다.
4분할 화면과 항적 애니메이션 창 아래의 ‘검색 밴드’를 움직이면 디지털 시계의 시각이 바뀌면서 시청을 원하는 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계 아래에는 '이슈 리본'들이 정렬돼 있습니다. 리본에 마우스를 올리면 해당 시점에 발생했던 중요 상황이 텍스트로 요약되어 표시되고, 클릭하면 타임라인 영상 전체가 해당 시간으로 옮겨가 재생됩니다.
이슈 리본 아래로 층층이 쌓여 있는 ‘데이터 소스 트랙’을 보면 어떤 출처의 데이터가 어느 시간대에 존재하는지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데이터 존재하는 구간을 클릭하면 ‘4분할 화면’ 한가운데에 해당 데이터가 추가로 재생됩니다. 뉴스타파가 제공하는 4개 영상 데이터와 1개 음성 데이터 외에 동시간대에 사용자가 보고 듣길 원하는 추가 데이터를 동시 시청할 수 있도록 한 기능입니다.
사고 이후 구조 작업 당시의 상황이 담긴 PART3에는 구조세력을 중심으로 한 각종 교신과 통신 음성들이 끊임 없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각 교신과 통신의 방식에 따라 통달 거리와 청취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당시 해경 등의 구조 활동 적정성을 판단하기 위해선 각 방식의 특성들을 미리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119 및 122 신고전화, 해경 경비전화, 해경-청와대 핫라인은 모두 통상적인 휴대전화나 유선전화 통화이기 때문에 당연히 1대1 대화입니다. 직접 통화한 사람이 별도로 보고하거나 전파하는 과정이 없다면 다른 구조세력이 공유할 수 없습니다.
TRS(Trunked Radio System)는 주파수무선공용통신입니다. 이 통신망은 현장 구조세력부터 해경 본청과 서해지방청, 목포서 등 전국 모든 해경 조직에서 장비만 갖추고 있으면 청취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당시 해경의 핵심 통신망이었습니다.
VHF(Very High Frequecy)는 초단파무선통신망입니다. 한반도 해안을 따라 설치돼 있는 여러 VTS(해상교통관제센터)와 해상을 운항하는 선박들의 주요 통신 수단입니다. 세월호는 항해 초기엔 인천VTS, 사고 이후로는 진도VTS·제주VTS와 VHF로 교신했습니다. VHF는 전파 도달거리가 제한적이고 기상 조건에 따라 통신 상태가 일정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던 123정과 목포서장을 태우고 있던 3009함도 신경을 써서 채널만 잘 맞췄다면 세월호와 진도VTS 간 교신을 청취할 수 있는 범위에 있었습니다.
SSB(Single Sideband)는 단파무선통신망입니다. VHF에 비해 출력은 낮지만 도달거리는 길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선들 간의 통신에 많이 활용됩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엔 SSB를 통해 제주운항관리실이 세월호와 교신했고, 123정은 현장으로 향하면서 주변 어선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해경 문자상황보고시스템은 카카오톡과 유사한 해경 내부용 문자 메신저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 구조세력은 TRS와 함께 문자시스템을 통해 중요한 보고와 지시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123정에는 문자시스템이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2013년부터 각급 함정에 문자시스템을 단계별로 도입하던 중었이었는데, 참사 당시인 2014년 4월에는 300톤급 이상 해경 함정(위성망 이용)과 100톤 미만 소형 경비정(3G망 이용)까지만 문자시스템이 설치됐고, 123정과 같은 100톤급 중형 경비정들에는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해경 본청과 서해청은 123정이 볼 수 없는 문자시스템을 통해 현장 상황 보고를 요구하고 각종 지시를 하달하는 난맥상을 보였습니다.
추가적으로, 당시 해경 경비정들 가운데는 위성망과 3G망을 이용해 현장 영상을 실시간으로 상황실에 송출할 수 있는 ‘비디오 컨퍼런스 시스템’이 탑재된 경우가 있었지만, 이 역시 123정 등 100톤급 함정에는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해경 지휘부는 123정에게 이 시스템을 빨리 작동시키라고 수 차례에 걸쳐 요구하기도 했습니다.